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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대비하려면 아파트 저층에 살아라(우크라이나 전쟁 교훈)

by mystory2023 2025. 3. 9.

서론: 고층아파트에 대한 로망

고층아파트는 오랫동안 현대인의 꿈이었다. 높은 층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펜트하우스, 그리고 “로얄층”이라는 이름 아래 부여된 사회적 지위는 고층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으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도 전쟁 전에는 이러한 로망이 존재했다. 나 역시 키이우에서 19층 아파트에 살며 창밖으로 펼쳐진 도심의 야경을 즐기곤 했다. 한국에서도 8층 이상의 고층은 “로얄층”으로 불리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사람들은 이를 성공과 안락함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키이우의 고층아파트는 꿈의 공간이 아닌 생존의 시험대가 되었다. 한국의 수도 서울과 수도권 역시 북한 장사정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고층아파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나의 경험과 키이우의 전쟁 현실을 통해 고층아파트의 환상과 한계를 살펴보고, 이를 한국의 맥락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고층아파트의 환상과 장점

고층아파트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분명하다. 키이우에서 19층에 살던 시절, 창밖으로 보이는 드니프로 강과 도시의 불빛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했다. 높은 층은 저층에 비해 소음과 먼지에서 자유롭고, 프라이버시와 안락함을 보장한다. 한국에서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편의 시설이 더해진 펜트하우스는 품격 있는 삶을 약속하며, “로얄층”은 부와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고층아파트는 전망과 상징성 덕분에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이다. 나 역시 전쟁 전에는 19층에서의 삶을 자랑스러워했다.

위기 시의 어려움과 문제점: 키이우 19층의 비극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꿨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키이우의 고층아파트는 자폭 드론과 미사일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살던 19층은 어느 날 새벽 폭발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던 평화로운 야경 대신 연기와 불꽃이 피어올랐다. 높은 층은 공격에 더 취약했고, 대피소로 내려갈 시간조차 부족했다. 19층에서 지하 대피소까지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데 10분 이상 걸렸고, 그 사이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정전이 되자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단수가 되면서 물통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문과 같았다. 한 번은 이웃이 무거운 물통을 들고 15층에서 발을 헛디뎌 부상을 입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키이우 주민들은 이런 현실을 겪으며 고층아파트가 생존에 얼마나 불리한지 깨달았다. 자폭 드론이 고층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폭발하는 장면은 뉴스를 통해 자주 접했고, 실제로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도 23층 건물이 무너져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사관들은 직원들에게 7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 발전기와 대피소를 갖춘 건물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19층에서의 삶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라 악몽이 되었다.

한국의 상황: 서울 로얄층과 북한의 위협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언제든 전쟁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있다. 북한은 약 570문의 장사정포를 보유하며, 이 중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 약 350여 문이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사거리는 최대 5460km로, 서울 강북과 경기도 북부가 직접적인 타격권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 초기 1020분간 집중 포격 시 시간당 1만 발 이상이 낙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북쪽 전망을 면한 도봉구, 노원구, 의정부 등은 북한과의 거리가 2540km로, 포탄 도달 시간이 30초1분에 불과해 대피가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의 “로얄층”에 사는 이들이라면 나의 키이우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19층에서 겪은 공포는 강북의 고층아파트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포격으로 전력망이 붕괴되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물 공급이 끊기면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난이 시작된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에서 고층 건물이 무너지면 키이우처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강남 등 남쪽 지역은 사거리 끝자락에 있어 직접적인 낙탄 피해는 적을 수 있으나, 혼란과 이차 피해는 피할 수 없다. 한국의 고층아파트는 대피소나 비상용 설비가 부족해, 평화 시의 “로얄층”이라는 이름이 위기에서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결론: 위기를 대비하려면 아파트 저층에 살아라

키이우의 19층에서 보낸 나날과 서울의 “로얄층”은 평화 시에는 꿈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주거의 가치를 완전히 뒤바꿨다. 키이우에서 폭발음 속 계단을 뛰어내리며 느낀 공포는, 서울 강북의 고층 주민들이 장사정포 포격 속에서 마주할 현실과 다르지 않다. 고층아파트에 대한 로망은 유지하되, 비상 상황에 대비한 설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대피소, 발전기, 물 저장 시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키이우의 비극은 단순한 타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단 현실 속 한국에 던지는 경고다. “로얄층”이라는 환상을 넘어,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